2007. 3.20 화요일
기름에 야채를 볶는 소리가 아침의 얕은 잠을 깨웠다. 얼른 시계를 보니 6시 였다. 얼른 눈꼽을 떼고 나오니 친정 어머니가 나물을 볶고 계셨다. 미안하고 고마워
"오늘은 제가 해야 되는데..." 라고 하며 거들자 어머닌
"오늘은 니 생일이니 내가 해야지" 하신다. 그러시며 나물을 볶고 생선을 굽고 분주히 움직이신다.
원래 생일날은 낳아준 은혜에 감사하며 어머니께 아침상을 올려야 하는데...거꾸로 된게 죄스럽다.
하필이면 화요일이라 그렇기도 하다. 월요일 야간 수업이 있어서 내 귀가시간은 밤 9시가 넘는다. 그래서 월요일밤은 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들을 봐 주시고 주무신다. 그러다보니 화요일 아침 준비는 어머니가 늘 해 주셨다. 오늘따라 왜 이리 죄송스러운지...
아이들과 남편의 축하 인사를 들으며 마흔 둘의 아침을 열었다. 각자 바쁘게 아침을 먹고는 모두 학교로 가고 난 뒤 엄마도
"오늘은 니 신랑이랑 맛난거 먹고 잘 보내라" 며 서둘러 가신다.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울컥 뜨거운 것이 목에 올라온다. 존경합니다. 어머니...
오빠와 새언니들의 문자를 받으며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니 장미 한 다발과 화분 하나를 든 꽃집 아주머니가 서 계신다.
"축하해요. 이 꽃은 교수님이 직접 고르신 것이고 이 화분은 제가 드리는 축하 화분이에요." 하며 내게 건넨다. 두 팔 가득히 꽃들을 들고 보니 생일이 정말 좋기는 좋다.
2시 30분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나서 창 밖을 보니 남편의 차가 들어온다. 이윽고 전화벨이 울리고 남편이 내려 오라고 한다. 허겁지겁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내려 가니 백화점으로 향한다.
"무슨 선물 받고 싶어?"
"글쎄, 뭐든 좋아...." 아...
남편은 내가 자주 가는 크레송 매장으로 날 데려 가더니 진달래색 트렌치코트를 입어 보라고 한다. 색깔이 너무 튀지 않느냐고 하니 원색이 아니라 괜찮을거라며 권한다. 입어 보니 정말 맘에 들었다. 맘에 든다고 하니 남편은 계산을 한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겨우 코트 하나에 20년전이긴 하지만 그 때의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 미안하고...아깝고...
집으로 날 데려다주고 남편은 다시 학교에 갔다. 그리곤 저녁을 예약해 두었으니 5시에 애들과 함께 1층에 내려와 있으라고 한다.
멀어지는 남편의 차를 보며 문득 눈물이 나왔다. 사랑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고마움의 감정이 더 앞서는것 같은 그런 감동....
이렇게 건강하게 생일을 맞게 해 준 신께 감사를 드리고 날 키워주시고 이 날까지 뒷바라지 해 주시는 어머니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20년동안 날 변함없이 지켜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어미를 만나 늘 부족한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난 생일이 좋다. 나이를 먹는것도 좋다. 생일을 맞으며 축하를 받고 선물을 받는것도 좋다. 선물 그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날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상대의 그 맘이 있어 더욱 좋다.
마흔 둘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들지 않는 나를 오늘도 어여삐 봐 주는 내 건강한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이제 철이 좀 들어야 할텐데...열심히 1년을 보내어서 마흔 셋엔 더욱 충만한 맘으로 생일을 맞이하고 싶다.